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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진주 남강 유등축제 | 진주성 | 김시민 장군

by 빛나는맛과탕 2024.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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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나무위키

 

진주성의 변천과정
 100년 전, 흑백사진에 담긴 《촉석루》 모습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본성동에 걸쳐 있는 둘레 1.7km의 석성(石城)으로,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고려 말 우왕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인 진주 대첩의 현장이기도 하다. 진주시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들르는 진주의 대표 명소이다. 지방에 위치해있으며 중세의 성채, 요새를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수학여행지라는 점에서 러시아 지방의 크렘린[2], 프랑스 카르카손과 비슷하다. 진주성은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인 진주 대첩의 현장이자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로 현대의 진주성은 내성뿐이다. 위의 이미지에서 조선시대 진주성 규모에서 볼수 있듯 외성까지 포함하면 훨씬 큰 성이지만 일제강점기에 도시개발 명목으로 외성들을 파괴해버려서 현재의 내성만 남았다. 외성은 몇차례 증/개축이 있었는데 특히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에 크게 증축되어 당시 조선도 나름대로 일본의 침공을 예상하고 전쟁대비를 했음을 알수 있게 해준다.

시내의 중심부에 위치해있어 관광객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진주논개제를 비롯해 개천예술제, 제야 타종행사, 각종 사생대회 등등 진주시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야외 행사가 진주성에서 열린다. 성공적인 지역 축제의 사례로 꼽히는 진주남강유등축제의 행사장으로도 매년 사용되고 있다.[3]

원래 남쪽의 남강, 그리고 북쪽은 연못이 해자(垓子) 역할을 하는 천혜의 요새였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연못들은 전부 매립되어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조선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장대 아래 나불천을 북쪽으로 이어 지금의 진주경찰서, 진주교육지원청, 중앙로터리, 동방호텔 일대를 해자로 하는 둘레 4km의 외성(外城)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외성 복원의 의미로 촉석문부터 진주교 사이 구간에 진주대첩 광장을 조성하고 있으며, 문화재 발굴 과정에서 조선시대 외성, 고려시대 토성(土城)과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수로도 발굴되었다. 또한 후삼국 시대로 보이는 유골과 유물이 발굴돼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부지 전체에 지하주차장을 건설하는 계획도 논쟁 끝에 대폭 축소하고 발굴된 유적 대부분은 보존되기로 했다.

 


이미지출처 나무위키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김방경의 12대손이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왜군의 침입 경로를 봉쇄하고 큰 전사자를 내며 패퇴시켰다. 김시민의 활약 덕분에 이순신은 해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왜군들은 보급에 직격타를 맞아 큰 손실을 입었다. 그야말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구국(救國)의 영웅. 사후 그의 충정과 공로를 기려 이순신과 동일하게 '충무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1554년 9월 23일, 충청도 목천현 갈전면 백전촌(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백전마을)에서 중훈대부(中訓大夫:종3품 문관의 품계) 행 사헌부 지평(行司憲府持平:정5품) 겸 춘추관 기주관(兼春秋館記注官)을 지낸 아버지 김충갑(金忠甲)과 어머니 창평 이씨(昌平 李氏)[3] 사이에서 6남 2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김시회(金時晦), 김시람(金時灠) 등 형 2명과 김시신(金時愼), 김시진(金時進) 등 남동생 2명이 있었다. <국조인물고>에 의하면 8세 때 마을의 가축들에게 해를 입혔던 큰  로 쏴 죽였다고 한다. <국조인물고>는 정조 때 편찬된 서적인데, 정조 때에도 김시민의 고향 사람들 사이에서 "저 곳이 바로 김시민 공께서 뱀을 쏘신 곳이다"라는 소문이 구전되었다고 한다. 장성해서는 몸집도 크고 도량이 넓었으나, 이 강한 것만 믿고 공부는 덜 하면서 목소리만 크게 냈다는 식으로 평가받기도 했었다.

 

1578년 무과 훈련원시에 급제해 겸사복(兼司僕)이 되었다.[4] 1583년 니탕개의 난 진압에 참여했으며, 1584년 별시 무과(대과)에 전체 4등인 을과 3위로 급제하였기에 단숨에 품계를 건너뛰어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종6품)에 제수되었으나, 병조판서에게 군사에 관한 일을 건의한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하고 낙향했다. <국조인물고>에 따르면 병조판서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격분한 김시민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던지고 발로 밟으면서 "장부가 이것이 아니라면 어찌 남에게 모욕 받을 수 있는가!"라며 소리치고는 바로 벼슬을 던지고 물러갔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다혈질이고 남성적인 면이 강한 천상 무인이었고, 자존심도 강했다. 이후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군기시 판관(軍器寺判官:종5품)이 되었고 1591년에는 진주목 판관에 제수되었다.

 

진주 대첩과 전사

1592년 10월 전라도 진공에 실패한 일본군은 진주를 통해 전라도로 진공할 목적으로 나가오카와 하세가와가 이끄는 3만의 대군을 진주성으로 보내 진주성을 공략하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주 대첩이다. 이에 김시민은 3,800여 명의 병사로 10배에 가까운 3만 대군에 맞섰고 곽재우, 최경회 등의 의병들도 일본군의 배후를 습격해 진주성에 힘을 보탰다.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엿새 동안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는데, 성 안의 백성들까지 합세하여 수적으로 많았던 일본군의 공세를 물리쳤다. 그러나 김시민은 전투 마지막 날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도중에 일본군의 탄환을 맞아 쓰러졌고, 그의 부장인 곤양군수 이광악이 김시민을 대신해 지휘하면서 남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시민은 이후 사경을 헤매다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이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임진록>에서는 김시민이 전투가 끝나고 군사들과 함께 사상자를 수습하고 있는데 죽은 척하고 엎드려 숨어 있던 일본군 조총병 하나가 김시민의 이마를 쏘아 전사했다고 기록되었다. 물론 임진록은 소설이기에 이건 사실이 아니지만, 아마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성벽에서 적군의 시체를 바라보다 죽은 척하던 일본군에게 총을 맞은 황진 오마주인 듯 하다. 조정에서는 진주성에서의 승전을 보고받고는 김시민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제수했지만, 애석하게도 교서가 당도한 것은 김시민이 죽은 이후였다. 이후 김시민은 원균도 제수된 선무1등공신이 아닌 선무 2등공신에 제수되고 진주의 충민사에 배향되었으며,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다.[7] 진주에서는 죽은 후에도 영웅으로 대접받았는데, 김시민이 전사하자 성 안에 울음소리가 천둥같았고 호남 영남의 인사가 다 조상하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어찌하는가?"라고 하였다. 1593년 김시민의 묘를 고향으로 이장할 때도 운구할 때 백성이 앞다투어 수레를 끌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 공이시여, 우리 공이시여! 우리 공이 없었으면 우리가 죽은지 오랠 것입니다."라고 통곡했다고 한다.[8]

한편 일본은 김시민의 분전으로 인해 진주성 공략에 실패한 뒤 김시민에 대한 원한을 불태웠으나, 정작 김시민이 전사한 줄도 몰랐다. 1593년 6월, 일본군은 10만의 대군으로 진주성을 재침공하였는데, 진주성은 일주일 동안 일본군 10만 대군을 상대로 버텨왔으나 끝끝내 함락되었고, 다수의 장수들과 진주성으로 모여들었던 6만명 가량의 백성들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일본군 역시 다수가 전사하여 전력 소모가 매우 컸다.[9] 이 때 일본군은 진주성을 지키던 진주 목사 서예원[10]을 잡아다 죽였는데, 서예원을 김시민으로 착각하여 "목사를 죽였다."라고 보고하며 서예원의 을 본국에 보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김시민의 조카 김유가 진주를 지나게 되어 한 초가에 묵게 되었다. 김유가 김시민의 조카였음을 안 초가집의 노인이 "제가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김시민 장군을 모셨습니다."라고 하며 김유의 손을 잡고는 "어찌 김 사또의 공적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울었다는 기록이 있다.

 

 

 

 

 

진주성도 보고

강정도 먹고

많이 걸어 보았네요..

 

다들 이번주도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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