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장유 DT점
감자튀김과 케쳡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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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창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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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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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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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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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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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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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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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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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억 8,544만 달러
(약 259조 3,723억 원, 2023년 9월 29일 종가 기준) |
매출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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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억 8,260만 달러
(약 31조 3,196억 9,300만 원, 2022년 기준) |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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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 위치한 최초의 맥도날드 매점.
지금은 맥도날드 박물관
일리노이 데스플레인에 있는 현재는 사라진[5] 맥도날드 1호점.
한때는 박물관으로 공개했었음. 1955 버거의 유래
미국의 글로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기업.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최초로 탄생했으며, 패스트푸드로는 단연 세계 1위인 다국적 기업으로 전 세계 각지에 영업점을 두어 진출해 있다. 그 위상은 단순한 음식 체인점을 넘어, 햄버거의 대명사이자 코카콜라·아이폰 등과 함께 미국식 자본주의와 세계화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이며 물가 상황 측정을 위한 하나의 경제 지표로 자리 잡아 있다.[6][7]
상호명은 창업자 형제의 성씨인 맥도날드(McDonald)에 명사의 소유격 어미 -'s를 붙인 표현에서 유래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맥도널즈'로 표기되지만 한국에서의 상호명은 '맥도날드'로 정했다.[8] 일단 라디오 코리아같은 미주 한인방송에서부터
맥도널즈라고 발음한다.
창업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리처드 제임스 맥도날드(Richard James McDonald, 1909. 2. 16.~1998. 7. 14.)와 모리스 제임스 맥도날드(Maurice James McDonald, 1902. 11. 26.~1971. 12. 11.) 형제이지만 맥도날드를 현재와 같은 위치로 끌어올린 기반을 마련한 것은 '레이 크록(Ray Kroc, 1902. 10. 5.~1984. 1. 14.)'이라는 체코계 미국인 사업가였다. 크록은 맥도날드의 창업자는 아니지만 맥도날드를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이끈 주역이기 때문에 창업자들보다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9] 다만 창업자 형제들도 요식업계의 판도를 바꾼 시스템을 개발한 업적이 있어, 기업 경영이 아닌 요식업쪽으로 가면 더욱 크게 주목 받는다.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던 맥도날드 식당은 지금의 맥도날드와는 많이 달랐다. 1937년 형제와 형제의 아버지는 "에어드롬(The Airdrome)"이라는 이름으로 캘리포니아 몬로비아 공항 근처에 매점을 열었다. 이후 1940년 5월 15일, 매점을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 옮기고 이름을 McDonald로 바꾸었다.[10][11]창업 초기인 1940년대는 고속도로 운전자들이 차에 탄 채로 즉석에서 햄버거나 밀크셰이크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드라이브인 노점이 인기를 끌었다.[12] 맥도날드도 이와 같은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맥도날드는 지금처럼 햄버거가 아닌 바비큐를 주력 메뉴로 삼았다. 오히려 햄버거는 당시 취급한 27가지 메뉴 중 하나인 곁다리에 가까웠다. 가게 이름도 '맥도날드 페이머스 바비큐'였다. 얼마간 돈벌이가 쏠쏠했지만, 사업이 정체되자 맥도날드 형제는 사업을 재검토했다.
맥도날드 형제는 드라이브인 자체의 한계점을 파악했다. 주문하고 음식을 받는 데 시간이 걸렸고[13], 주문을 받을 점원들도 많이 필요해 인건비 지출이 심했으며, 고객들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메뉴도 많아서 그만큼 낭비가 심했다.
그래서 맥도날드 형제는 대대적으로 시스템을 손을 봤다. 점원이 주문을 받는 대신 직접 손님이 주문하도록 바꿨고 매출을 검토한 결과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간편하게 즉석에서 소비할 수 있는 메뉴인 햄버거와 감자튀김, 음료수라는 것을 파악했고 선택과 집중에 따라 과감히 메뉴를 정리하여 햄버거 위주의 라인업을 갖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맥도날드 형제가 가장 중요시한 변화는 바로 속도전이었다. 30분을 기다려야 나오는 음식들을 30초 만에 나올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인근 공원의 테니스코트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가장 효율적인 주방 동선과 기구의 배치를 고안했다. 그리고 실제 크기로 그린 전개도 위로 직원들을 보내 직접 동선을 몸에 익히도록 지시했다.
맥도날드 형제의 시스템은 손님이 직접 햄버거를 주문하고, 조리원 1명은 패티만 굽고 다른 1명은 빵을 굽는 식으로 햄버거 조리를 분업화하여 햄버거 가격과 주문한 햄버거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절반 이상 줄였다. 그리고 접시나 식기류를 제공하지 않고 종이 포장으로만 충분한 핑거 푸드를 냄으로써 비품 가격과 품을 줄일 수 있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혁신에 반발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직접 주문하고 직접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손님도 끊기고 원래대로 회귀해야 되냐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었다. 하지만 결국 고속으로 요리가 나오는 창의적인 식당으로 탈바꿈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바로 이것이 패스트푸드의 시작이다.
1954년, 믹서기 외판원으로 일하고 있던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에서 일반적인 수요 이상으로 밀크셰이크용 믹서기를 많이 구입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샌버너디노에 있는 맥도날드 식당에 찾아가게 되었다.
셰이크 제조기 외판원이었던 크록은 마치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이 축소된 것 같은 이 식당의 경영 방식에 감탄했고, 맥도날드 형제에게 자신이 프랜차이즈 관리를 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맥도날드 형제는 과거에 자신들이 했던 프랜차이즈점의 품질 관리에 실망했던 전력[14]이 있어 점포 확장에 너무 소극적이었다.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했던 셈.
그러나 맥도날드의 시스템에 가능성을 본 크록은 집요한 설득 끝에 프랜차이즈 사업의 수락을 받아낸다.[15] 크록은 공격적으로 점포를 늘리며 프랜차이즈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결국 맥도날드 형제와 불화가 일어난다. 1954년 전국적으로 햄버거 체인 사업을 확대하자는 크록의 제안에 맥도날드 형제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 현관이 있는 하얀 집이 보이지? 그게 바로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우리 집이야. 우리는 저녁마다 현관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여기 있는 우리 가게를 내려다보면서 평화를 느끼면 되는 거야. 우리는 이 가게를 운영하면 그만이지 더 이상 복잡한 구조를 만들 필요는 없어. 더 많은 가게를 내면 그만큼 더 많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삶을 즐기고 있고. 그게 바로 우리가 바라는 생활이야."
당연히 레이 크록은 그것에 만족할 리가 없었고, 자신이 1955년 4월 15일에 일리노이에 설립한 첫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점을 1호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을 시작으로 자신의 맥도날드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1955 버거도 그렇고 맥도널드 홈페이지에 가면 연혁이 이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1955년 개점 당시 맥도날드 가격을 보면 햄버거는 15센트, 치즈버거는 19센트, 프렌치 프라이&음료수는 10센트, 밀크셰이크는 20센트였다. 당시 미국인의 1인당 GDP가 2578달러였던 것에서 추산하면 일당은 7달러 안팎이었으니 맥도날드 외식은 당시 미국 서민들의 외식에 안성맞춤 수준이었던 셈.[16]
이후 레이 크록은 법률자문을 받아 "프랜차이즈 사업을 돕는 맥도날드란 이름의 부동산 회사"를 별도로 설립하여 프랜차이즈 사업에 관한 맥도날드 형제와의 계약을 회피하고,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점들의 토지를 소유해 사업을 장악하게 된다. 이 부동산 회사가 결국 지금의 맥도날드가 된다.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는 전국적인 사업이 된 반면 고작 점포 하나를 가진 맥도날드 형제는 결국 1961년에 270만 달러와 연 이익의 1.9%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가졌던 원래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사업의 권리를 크록의 회사에 판다. 그러나 이익의 1.9%지급은 구두로 계약하였고 이를 증명하질 못해 이에 대해서는 한 푼도 못 받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점포에서 맥도날드란 이름을 쓸 수 없게 되자 'The Big M'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였지만, 별 재미는 못 봤다. 그래도 나중에 맥도날드의 친선대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결국 로열티는 못 받았으니 좋은 결말은 아닌 셈.[17]
이 일화를 다룬 영화 '파운더'가 2017년 4월 국내에 개봉했다. 작중 레이 크록 역은 마이클 키튼이 분했다. 겉으로 드러난 시놉시스만 보면 마치 맥도날드 홍보 영화, 레이 크록의 성공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실제 내용은 레이 크록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인 피카레스크 영화에 가깝다. 크록의 행보를 비판적으로 그린 것은 아니고 미화나 비하 없이 그대로 그렸는데 워낙 실제 인물이 한 짓이 있다보니 주인공 크록을 욕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성공한 직후에 40년 가까이 함께한 조강지처와 이혼한 것, 유부남인 상태에서 나중에 아내가 되는 조앤에게 한 눈에 반한 것(자서전에서 "금발의 매력에 반했다"고 표현), 창업자 맥도날드 형제를 엿먹인 것, 맥도날드 형제가 오리지널 맥도날드 점을 넘기길 거부하자(이들은 같이 고생한 창립 멤버들에게 레스토랑의 권리와 운영을 통째로 넘기겠다고 했다) 이에 앙심을 품고 "Big M"이라고 이름을 바꾼 맥도날드 형제의 가게 바로 옆에 맥도널드 점포를 차려서 이들을 망하게 한 것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McDonald라는 이름은 당연히 창업자의 성에서 따온 것인데 어원을 따져보면 Mc은 게일어에서 ~의 아들을 뜻하며(Mac으로 쓰기도 함) Donald는 켈트어 dumno(세상)과 val(지배자)에서 온 것. 세상의 지배자의 아들이라는 뭔가 대단한 이름이 된다. 정작 이 이름을 가진 창립자 형제는 거의 패가망신했다는 게 아이러니.[18]
맥도날드는 단일 기업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거리와 교차로에 땅을 갖고 있다. 사실 말그대로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사는 맥도날드 형제와의 식당 프랜차이즈 계약을 편법으로 우회하려고 부동산업 기업으로 등록되어있다.
즉 대중적으로 햄버거를 판매하여 이득을 취하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햄버거는 2차적인 부분이고 실제로는 부동산 사업을 벌이는 업체라는 것이다.
기존의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이미 토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장을 내도록 해주었고 저렴한 프랜차이즈 비용을 받는 방식이라, 처음 매장을 열 때 높은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맥도날드의 경우 회사가 직접 부동산을 소유해 매장을 개업할 때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매장 설립 이후 프랜차이즈 비용에 임대료를 포함하여 받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는 경쟁 업체보다 빠른 속도로 매장 수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한 경영 전략이었다. 이런 사업 방식을 유지하려면 맥도날드 본사가 소유한 부동산이 매장 영업이 잘될 만한 입지여야 하며, 결론적으로 이 모델은 맥도날드 본사가 지역의 상권 분석을 정확히 해서[19] 좋은 위치의 부동산을 소유해야만 성립 가능하다.
맥도날드는 부동산을 취득하여 맥도날드를 오픈하고 햄버거 가게 점주로부터 렌트비와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한 예로 맥도날드가 오픈되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이런 이점을 활용하여 주변 부동산을 선점한후 차익을 남기고 매매하여 매우 많은 이득을 남겼다고 한다.
사실 이런 맥도날드의 방침은 꽤 그럴듯한 전략이었다. 어떤 곳에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면 흔히 옆에 KFC나 버거킹, 한국일 경우 롯데리아, 필리핀의 경우 졸리비가 같이 생긴다. 그리고 여기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었다. 맥도날드도 바보는 아니니 상권이 형성될 만한 곳을 골라서 부동산을 사서 직영점을 꾸미고, 경쟁사가 이런 맥도날드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주변에 가맹점을 내는 것. 상권이 형성되면 당연히 부동산이 오른다. 이런 맥도날드 버프라는 게 실존했다.
실제로 한국맥도날드 홈페이지의 임차 정보란에 "건물 임대의 경우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와 근교 지역을 우선으로 투자를 받습니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람이 많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그 대도시에서도 사람이 몰려 장사가 될 만한 곳을 고르고 골라 거기에만 점포를 내는 것이다. 대구의 모 매장은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 디지털프라자가 입점해있는 부지를 사 버린 뒤 건물을 허물고 맥도날드가 직영점으로 들어왔다. 맥도날드가 들어온 뒤 삼성전자서비스옆에는 하이마트가 들어오고 맥도날드 옆에는 스타벅스 승차 구매점(DT)도 생겼다. 덤으로 부근에 있던 롯데리아는 사라졌다.[20]
그래서 다른 프랜차이즈는 지점 매출액의 6-10%를 건물주에게 임대료로 지불하는데 맥도날드는 10-15%를 임대료로 맥도날드 본사에 지불한다. 그래서 맥도날드 본사의 영업이익의 30%가 부동산 임대수익이다. 가맹 지점 점주는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지만 확실한 상권이라 투자 위험이 적고 불황을 거의 타지 않는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월마트와 맥도날드가 이러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가맹점에 임대해 주는 전략을 사용하는 대표적 프랜차이즈이다.
황금 아치 이론
No two countries that both had McDonald's had fought a war against each other since each got its McDonald's.맥도날드가 있는 어느 두 나라도 그것이 생긴 이후로 서로 전쟁한 적이 없다.
Golden Arches Theory.
황금 아치 이론은 경제학자 토머스 프리드먼이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주장한 이론으로, 그 내용은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황금 아치'란 맥도날드의 로고를 이르는 것이다. 맥도날드가 진출한 나라는 그만큼 구매력이 받쳐주는 안정적이고 두터운 중산층이 존재한다는 뜻이기에, 요지는 '일정한 경제 수준에 이른 나라들은 비슷한 체격의 나라와 전쟁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로 인하여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각국 경제가 긴밀하게 얽히므로 전쟁을 안 할 때보다 전쟁을 할 때 잃을 것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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